유네스코 문화유산

유네스코 문화유산
그 어느 민족보다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한민족은 오랜 역사 속에 서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대륙 문화와 해양문화를 모두 수용하고 자연조건에 순응하면서 독창적
이면서도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를 형성했다. 한국의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음악, 미술, 문학, 무용 등 모든 예술에는 전통과 현대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건축, 의복, 음식 등 의식주를 비롯한 다양한 생활양식도 마찬가지다. 한국 문화예술은 최근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클래식음악을 전공하는 젊은이들이 국제콩쿠르 무대를 휩쓰는가 하면 문학작품들도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외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일본, 중국, 동남아를 거쳐 미국과 남미 • 유럽에서도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K-Pop의 열기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로 전 세계를 놀라고 즐겁게 만들었다. 이런 현상의 바탕에는 조상들이 장구한 역사 속에 은근과 끈기의 민족정서와 투철한 장인정신을 발휘해서 창조해낸 전통문화의 뛰어난 예술성과 정교함이 들어 있다. 삼국시대의 고분벽화와 유물에서 느낄 수 있는 독창적인 예술적 감성이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며 더욱 풍부해지고 깊어졌으며, 이런 예술성이 오늘의 한국 예술인과 전체 국민의 핏줄에 연면히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국의 문화예술유산 가운데 1990년대부터 유네스코 보호대상으로 지정된 것이 적지 않다. 세계유산, 세계기록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40건에 이른다.

유네스코 등재유산

창덕궁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에 위치한 창덕궁은 조선시대(1392~1910) 옛 궁궐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 유적이다. 1405년에 별궁으로 완공되었지만, 정궁이던 경복궁이 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전부 타버리고 1867년 중건되기까지 조선의 왕들은 창덕궁을 정궁으로 사용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창덕궁은 조선시대에 지어졌으나 고려시대 궁궐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며, 자연지형에 맞춰 산자락에 지어졌다. 궁궐은 대개 존엄성과 권위를 드러내도록 인위적으로 건축되지만, 창덕궁은 자연조건을 살려 북악산 줄기인 응봉의 산자락 모양에 맞게 궁궐을
기능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했다. 정문인 돈화문을 비롯해 인정전, 선정전 등 당시의 여러 건물이 고스란히 남았고, 한국의 전통정원인 비원까지 딸려 있는 훌륭한 역사유산이다. 궐내에 위치한 낙선재는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종묘
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위치한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 추존 왕과 왕비 등 모두 83위의 신주(돌아가신 분의 영혼이 의지할 수 있는 상징물)를 모시고 있는 조선 왕조의 사당이다. 유교를 근본이념으로 한 조선은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머무르는 곳을 중요시하였는데 국가 차원에서 유교 이념을 실천하였음을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대칭구조이며 신주가 보관되어 있는 건물인정전과 영녕전의 기단과 처마, 지붕의 높이, 기둥의 굵기가 위계에 따라 다르게 되어 있다. 16세기 이래 원형이 보존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독특한 건축양식을 지닌 의례공간으로 가치가 있다. 이곳에서는 이들의 넋을 기리는 종묘제례가 정기적으로 거행된다.

수원 화성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수원 화성은 1796년 조선 정조 임금 때 건립된 전체 길이 5.7km의 성곽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경기도 양주에서 이 근처로 옮기면서 성을 쌓도록 했
다. 성곽시설의 기능이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구조를 갖고 있으며, 보통의 성곽과 달리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갖춰 문화재로서 높게 평가받는다. 실학자인 정약용이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개발한 거중기(움직 도르래를 이용, 낮은 곳의 돌을 쌓는데 사용)와 녹로(고정 도르래를 이용, 크레인처럼 돌을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데 사용) 등 과학적 기구를 동원하여 완공하였다.

석굴암, 불국사

석굴암은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에 위치한 통일신라 시기의 대표적인 석굴 사찰이며, 774년 완공됐다. 뛰어난 조각기법이 발휘된 작품으로 동해에 떠오르는 해의 빛이 석굴암까지 깊숙이 들어와

부처의 이마를 비추도록 설계되어 있다. 석굴암과 같은 시기에 건립된 불국사는 사찰의 전체적인 배치가 뛰어나며, 대웅전 앞마당에 나란히 서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특히 돋보인다. 두 탑 모두 신라 양식을 표현하면서도 석가탑은 단순한 반면, 다보탑은 정교하고 화려하다. 다보탑은 화강석을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 탑을 쌓은 형태로 한국의 석탑 중에서도 형태가 매우 특이하다. 한국의 10원짜리 동전에 모습이 등장한다. 한편, 장식을 생략한 채 구조적인 비례에 따라 완전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석가탑은 한국 불교 석탑의 원형으로 여겨져 이후 비슷한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불국사의 대웅전으로 오르는 청운교(푸른 구름 다리)와 백운교(흰 구름 다리)도 조형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극락정토에 들어가려면 물을 건너고 구름을 지나야 한다는 종교적인 상징성도 내포하고 있다.


조선 왕릉

동구릉, 서오릉, 서삼릉, 홍유릉 등은 조선시대의 왕릉이다. 모두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구리시, 고양시, 남양주시 등에 있다.

조선시대의 왕과 왕비의 무덤은 모두 44기며, 이 가운데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왕릉은 유교사상과 풍수지리 등 당시의 가치관이 압축된 장묘문화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 왕릉이 훼손되지 않은 채 원래 모습대로 보존돼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해인사 장경판전
고려대장경 경판들은 해인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장경판전에 보관돼 있다. 1488년 완성된 장경판전의 건축에는 원활한 실내 통풍과 방습으로 목재 경판의 부식을 막기 위해 과학적이고 독특한 방식이 사용됐다. 대장경판이 보관된 장경판전은 해인사에서 가장 높은 해발 700m 지점에 지어졌다. 건물은 네 방향으로 각각 마주 보도록 설계돼 통풍이 원활하다. 가야산 지형의 특성상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해 자연 환기가 가능하다. 벽면의 위아래, 건물의 앞뒷면의 살창 크기를 다르게 해서 공기가 실내에 들어가 아래위로 돌아 나가도록 만들었다. 공기가 대류되도록 하고 적정 온도를 유지해주는이 살창은 우수한 과학적 건축기술을 잘 보여준다. 건물 바닥은 땅을 깊게 파고 숯, 찰흙, 모래, 소금, 횟가루 등을 뿌렸는데, 이는 비가 많이 오면 습기를 빨아들이고, 가뭄이 들면 습기가 올라오도록 자동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672년 통일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6년 조선 인조 임금 때 대대적으로 수축됐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지형적으로 평균 고도 해발 480m 이상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 방어력을 극대화하였으며, 둘레가 약 12.3km에 이른다. 산 위에 도시가 형성되어 조선시대 기록에서 보면 약 4,000명 정도가 남한산성에 거주하였으며, 비상시에는 백성과 왕조가 대피할수 있는 조선 왕실의 보장처 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도성의 성격을 갖추기 위해 행궁을 비롯한 종묘와 사직단이 1711년 숙종 임금 때 조성되었다. 또한 남한산성은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계속된 국제전쟁을통해 동아시아의 한국(조선), 일본(아주치-모모야마시대), 중국(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광범위한 상호 교류가 이루어진 결과이다. 이 기간 서양의 화포 도입으로 무기체계가 변화함에 따라 남한산성의 성곽 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 7세기에서 19세기 까지 시대별 성곽축성술의 변화과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660년까지 700여년간 존재한 한반도의 고대국가 중 하나이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 등 3개 시•군의 8곳 문화유산으로 구성되어있다. 세부 등재 지역을 살펴보면, 충남 공주시는 공산성(사적 제12호), 송산리 고분군(사적 제13호) 등 2곳, 충남 부여군은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사적 제428호와 사적 제5호), 능산리 고분군(사적 제14호),
정림사지(사적 제301호), 부여나성(사적 제68호) 등 4곳, 전북 익산시는 왕궁리유적(사적 제408호), 미륵사지(사적 제150호)등 2곳이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5-7세기 한국, 중국, 일본의 고대 동아시아 왕국들 사이의 교류와, 그 결과로 나타난 건축기술의 발전과 불교의 확산을 보여주는 고고학 유적이다. 또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수도의 입지, 불교 사찰과 고분군, 건축물과 석탑을 통해 한국의 고대왕국 백제의 문화, 종교, 예술미를 보여준다. 이 모든 요소는 동 유산이 한국•중국•일본 동아시아 삼국 고대 왕국들 사이의 상호 교류 역사를 잘 보여줌과 동시에 백제의 내세관•종교•건축기술•예술미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백제 역사와 문화를 증명하고 있다. 고대 도성의 필수 요소인 산성, 왕궁지, 외곽성, 왕릉, 불교사찰은 백제역사유적지구의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보여주고 그 전부가 유산에 포함되어 있다. 이 유적들은 백제 건축 구조의 중요한 증거와 기술적 진보, 발전을 온전한 형태로 보존하고 있다. 산성, 성벽, 왕릉의 산지지형과 교통로적 입지 또한 중요한 요소이며 이는 신청유산과 완충구역 내에 포함된다. 유산의 모든 요소들은 각각 국가지정 문화재이며, 세 개의 도시는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보
존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고대 수도이다. 또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고고학적 유적지, 산성, 왕릉, 석탑의 건축학적 구조와 전체적인 도시 레이아웃의 진정성을 지키고 있다. 신청유산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진정성을 결정하는 모든 측면들의 역사적 증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세계기록유산
훈민정음

한글은 독창적인 글자로, 사용하기에도 간편하다. 다른 나라 글자들과 달리 발성기관을 본떠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과학적이다. 세종대왕이 1446년에 한글을 반포했을 때, 공식 명칭은 훈민정음이었다. 같은 해 학자들은 왕명에 따라 훈민정음 해설서를 만들었는데, 이 책의 제목도 훈민정음이므로 둘을 구분하기 위해 해설서를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도 한다. 한글을 창제한 목적과 원리 등이 상세히 설명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서울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배우기 쉽고 쓰기도 간편한 한글이 반포된 후에야 비로소 하층민과 여자들도 글을 익히고 사용할 수 있었다. 한글은 반포 당시에는 모두 28개 글자였으나 지금은 24개만 쓰인다. 한편, 유네스코는 1989년 ‘세종대왕 문해상’을 제정하고 세계의 문맹 퇴치를 위해 노력한 개인이나 단체를 선정해 해마다 시상한다.

조선왕조실록

1392년부터 1863년까지 472년 동안 조선시대 임금과 신하들의 행적 및 정책과 관련된 사실들을 시간 순으로 기록한 역사기록이다. 모두 2,077권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도서관에 보관돼 있다.실록 편찬은 주로 임금이 타계하고 다음 임금의 즉위 초기에 이뤄졌으며, 사관이 수시로 작성해두었던 사초를 기본 자료로 활용했다. 왕실의 동향은 물론, 당시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걸친 다양한 역사적 사실이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아주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실록이 완성되어 일단 사고에 보관되면, 누구에게도 열람이 허용되지 않았다. 왕실의 제사나 외국사신 접대 등 중요한 행사가 열릴 경우에만 과거의 사례를 참고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그 내용의 일부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는 원래 궁궐 내의 춘추관과 충주, 전주, 성주 등 4곳에 있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버렸다. 이후 묘향산, 태백산, 오대산, 강화도 마니산에 새로 사고를 설치해 실록을 보관했다.

승정원일기

1623년 3월부터 1910년 8월까지 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에서 매일 처리한 문서와 사건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역대 임금의 명령은 물론, 각 관청의 보고와 상소 내용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총 3,243권에 이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돼 있다.

 

일성록

조선 후기 왕의 활동과 국정 운영을 기록한 연대기이다. 왕의 처지에서 기록한 일기체로 기록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정부 공식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1760년(영조 36년)부터 1910년(융희 4년)까지 151년간의 기록이

총 2,329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8~20 세기 조선 내부의 정치 활동부터 동서양의 정치·문화적 교류의 구체적 모습과 세계사의 보편적 흐름까지 담고 있다

조선왕조 의궤

조선시대 왕실에서 거행된 여러 가지 의례의 내용을 정리한 기록이다. 왕조실록보다 내용이 자세하며 임금의 행차 모습 등이 그림으로도 표현되어 더 사실적이다. 왕비와 세자의 책봉과 혼례를 비롯해 왕실의 장례, 왕릉의 조성과 이장 등 제례가 주요 내용이지만, 임금이 모범을 보이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짓는 친경이나 궁궐 건물의 신축과 보수 등의 경우에도 의궤가 편찬되었다. 정조 임금 때 화성 성곽 축성과 수원 행차를 담은 상세한 의궤가 작성된 것이 그중 하나다. 의궤는 왕조실록과 마찬가지로 사고에 보관되었는데, 조선왕조 초기의 의궤는 1592년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됐다. 다행히 그 이후 제작된 총 3,895권에 이르는 방대한 의궤가 남아 있다. 또한 1866년 프랑스군이 반출해 그동안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이 의궤는 한국 정부와 학계의 지속적인 반환요청으로 2011년 영구임대 방식으로 모두 반환됐다.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고려시대(918~1392)인 1236년부터 15년간에 걸쳐 불경을 나무에 새긴 경판이 고려대장경판이다. 경판의 수가 총 81,258개이므로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경판마다 양면에 새겨져 있다. 현재 경상남도 합천군의해인사에 보관돼 있다. 해인사는 802년에 지어진 불교 사찰이다. 고려대장경판은 몽골의 침입으로 국난에 처한 고려가 불교의 힘으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작됐다. 고려대장경판은 중국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때 새겨진 다른 대장경판과 비교할 때 불교

내용이 훨씬 풍부하며, 경판이 온전히 보존된 값진 세계문화재이다. 고려대장경판 제작은 한국의 인쇄와 출판 기술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5 • 18민주화운동 기록물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대한민국 광주를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화 요구 운동을 의미한다. 5•18민주화 운동은 1980년대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서 민주화 운동을 확산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물은 당시 시민들의 일련의 활동과 이후에 이 사건의 피해자 보상과 관련해 기록되고 생산된 문건, 사진, 영상등의 자료를 총칭하는데, 등재 기록물은 5•18기념재단, 국가기록원, 육군본부, 국회도서관, 미국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류무형유산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
종묘제례는 종묘에서 행하는 조선 왕조의 정교한 기념 의식으로 매년5월 첫 번째 일요일에 거행된다. 종묘제례는 조선 왕실에서 가장 격식이 높은 의식이었는데 유교가 국가이념으로 자리 잡은 조선시대에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통해 인간의 도리를 실천하고 사회적 유대감과 질서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종묘제례와 더불어 의식을 장엄하게 치르기 위하여 연주되는 기악(樂)과 노래(歌) • 춤(舞)을 종묘제례악이라 하는데, 타악기, 현악기 등 다양한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과 문무(文舞)와 무무(武舞)의 무용을 통해 중후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보여 준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의식과 음악이 어우러져 500년 이상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온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판소리
판소리는 한 사람의 창자(唱者)가 소리, 아니리, 발림으로 긴 이야기를 엮어 나가고, 고수는 추임새를 하며 북 장단으로 반주하는 극노래이다. 18세기부터 현대까지 많은 사랑을 받으며 예술음악으로 발달해왔다.

강릉단오제
한국에서 가장 역사가 깊으면서 전통 민속축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축제이다. 매년 단오(음력 5월 5일)를 앞두고 강원도 강릉에서 30여 일간 진행된다. 마을을 지켜주는 대관령 산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번영, 집안의 태평을 기원하며 지역주민이 화합하고 단결하는 협동정신을 볼 수 있다.

단오제는 음력 4월 5일 신에게 바칠 술을 빚으면서 시작된다. 이를 ‘신주담기(신주근양)’라고 하는데 천상과 지상의 영혼을 연결하는 음식으로 술은 곧 신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이 밖에 관노들이 춤과 몸짓으로 놀았던 한국 내 유일의 무언가면극인 관노가면 극을 비롯하여 그네뛰기, 씨름, 농악경연대회, 창포머리감기, 수리취떡먹기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특히 창포머리감기는 여자들이 단옷날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나쁜 귀신을 쫓는다는 뜻에서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아 윤기를 더하게 하는 세시풍속이다.

강강술래
전라남도의 해안 지역 일대에서 추석이나 정월대보름에 주로 부녀자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노래, 춤과 놀이가 혼합된 민속놀이이다. 현재는 예술적으로 발전하여 전국에서 민속공연으로 행해진다. 야외의 넓은 공간에 모여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추는 집단 무용을 기본으로 하고 중간에 ‘남생이놀이’, ‘덕석몰이’, ‘고사리꺾기’ 등 여러 놀이가 삽입된다. 강강술래의 노래는 한 사람이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합창으로 받는데 처음에는 느린 진양조의 가락으로 부르다가 점차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빨라지며, 춤 동작도 여기에 맞추어 변한다.

남사당놀이
남사당놀이는 일종의 유랑악단인 남사당패가 장터와 마을을 돌며 펼치던 풍물놀이, 줄타기, 대접 돌리기, 가면극, 꼭두각시놀음 등의 공연이다. 주로 농부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한국 고유의 민속 연희다. 북, 장구, 꽹과리, 징, 나발, 태평소를 연주하며 춤추고 노래한다. 김매기 • 논매기 • 모심기 등 힘든 일을 할 때, 일의 능률을 올리고 피로를 덜며 협동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데서 비롯됐다.

영산재
죽은 사람 영혼의 극락왕생을 위해 행해지는 범패와 춤 등 불교의식이다. 사람이 죽은 지 49일째에 행해지는 불교식 제사의례의 하나다.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어왔으며,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안녕을 위해서도 행해졌다. 전통문화의 하나로,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 부처님의 참진리를 깨달아 번뇌와 괴로움에서 벗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하고 공연이 아닌 대중이 참여하는 장엄
한 불교의식으로서 가치가 있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제주도 지역의 전래 마을굿의 하나로 풍어와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음력 2월을 영등달이라고 하는데, 이 기간에 바람의 신인 영등할머니가 마을과 집안에 들어와 떠돌다가 보름날에 나간다고 여기는 민속신앙에서 비롯되었다.

택견
기원전부터 유래된 한국 전통무예의 하나다. 각희(角戱)•비각술(飛脚術) 등으로도 불리는 택견은 ‘차기’라는 뜻을 가지며 고문헌에는 ‘탁견’으로 나온다. 태권도와는 역사적•기술적으로 별개의 무예이다. 택견의 특징은 손•발과 몸 동작이 근육의 움직임과 일치하여 유연하고, 상대방과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는 무술이라는 것이다. 또한 음악적이며 무용적인 리듬을 갖고 있어 예술성 짙은 무예로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하고 발을 많이 움직인다. 경기 방법은 경기자가 각각 상대방을 향해 한쪽 발을 내딛는 대접(待接)의 상태에서 손발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넘어뜨리거나 얼굴을 발로 차면 이기게 된다.

줄타기
광대가 줄을 타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재담을 늘어놓는 놀이이다. 줄광대가 줄 위에서 재주를 부릴 때, 밑에서는 어릿광대가 익살을 부리며 분위기를 띄운다. 한때는 궁중에서 새해의 평안을 기원하던 나례나 외국 사신을 영접하는 잔치 등에서도 행해졌으나, 점차 마을이나 장터의 서민놀이로 바뀌었다. 부잣집의 환갑잔치나 생일잔치 등에서도 선보이곤 했다. 한국의 줄타기는 외국의 줄타기와 달리 줄만 타는 몸 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노래와 재담을 곁들여 줄 타는 사람과 구경꾼이 함께 어우러진 놀이판을 이끄는 특징이 있다.

매사냥
야생의 매를 조련해 꿩이나 토끼를 잡는 사냥놀이이다. 한반도에서는 수천 년 전 시작돼 고려시대(918~1392)에 가장 성행했으며, 지역적으로는 북쪽에서 더 유행했다. 시기적으로는 음력 10월부터 겨울철을 지나 봄 농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이어졌다. 매의 발목에는 가죽끈을 매고 꼬리에는 길들인 주인 이름을 기재한 시치미와 방울을 달았다. 방울의 용도는 꿩을 잡아 땅으로 내려앉은 매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2010년 몽골, 프랑스, 체코, 스페인, 시리아 등 모두 11개 나라와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아리랑
아리랑은 지역마다 가사마다 특색과 가락을 지니고 다양하게 전해지는데, 여음구에 ‘아리랑’, ‘아라리’와 비슷한 구절이 들어간다.
때로는 농사일의 고충을 달래는 노동요로 불리기도 하고, 마음을 이어주는 사랑노래가 되기도 하고, 풍요의 바람이 담긴 기원의 노래가 되기도 하며, 즐거울 때 흥을 돋우는 유희요가 되기도 한다.
아리랑이 오랜 세월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누구나 쉽게 가사를 지어 자신의 노래로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랑’의 악보와 중요성을 처음 기록으로 남긴 사람은 미국인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다. 그가 월간지 1896년 2월호에 기고한 ‘한국의 성악’이란 제목의 글에는 ‘아리랑’이 다음과 같이 소개됐다.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노래는 ‘아리랑’이라는 아름다운 제목의 곡이다. 일반 한국인에게 음악에서 ‘아리랑’이 차지하는 지위는 음식에서 쌀밥이 차지하는 그것과 같다. 다른 모든 노래는 ‘아리랑’의 아류에 지나지 않으며, 한국에서 아리랑은 언제 어디를 가든 들을수 있다. ‘아리랑’은 즉흥적인 가사와 곡조로 수없이 많이 변형돼 전설, 민담, 자장가, 권주가, 살림살이, 여행, 사랑 등 한국인의 서정적, 서사적, 교훈적인 삶을 전하고 있다. ‘아리랑’의 가사는 영국의 전승동요, 바이런과 워즈워스의 시, 미국의 조엘 해리스의 동화집 《리머스 아저씨의 노래와 이야기》 등이 하나로 결합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김장문화
김장은 한국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월동 준비로 겨우내 먹어야 할 대량의 김치를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김치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로 한국인의 밥상에는 주요 반찬으로 항상 등장한다. 따라서 김장은 한국인의 겨울나기 중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김장은 세부적으로 계절별로 해야 할 일이 있는, 1년이 걸리는 과정이다. 봄에는 각 가정에서 새우젓, 멸치젓 등 다양한 해산물 젓갈을 준비한다. 여름에는 천일염을 준비하고 늦여름에는 고추를 말려 고춧가루를 빻아 놓는다.

늦은 가을과 초겨울에 본격적 김장 시기가 되면 준비한 재료로 가족 단위에서부터 마을 단위 등 공동체별로 다 함께 모여 김치를 담근다. 김장문화는 공동체가 함께 모여 많은 양의 김치를 담그면서 개인주의 분위기가 강한 현대 사회에서도 사회 구성원들 간 연대감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한다. 또한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어온 한국인의 나눔문화를 보여 준다. 한국인의 독특한 식생활 문화이면서 공동체와의 연대감, 나눔문화까지 아우르는 김장문화는 2013년 12월 5일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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